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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음악, 펑크 음악, 미국 음악 역사, 대중 음악 역사

디스코의 등장과 국제화

디스코의 등장과 국제화

디스코의 등장과 국제화
디스코의 등장과 국제화

디스코 하면 떠오르는 것은 화려한 무늬의 셔츠라든가 뾰족구두에 타이트한 나팔바지 그리고 원색의 양복이나 원피스를 입은 청년들이 나이트클럽에 모여서 춤추는 장면 같은 것들이죠. 지난 2020년 여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BTS가 밝고 경쾌한 레트로풍의 디스코 팝 분위기를 담은 '다이너마이트'를 발표했었죠. 뮤직비디오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감을 담아서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팬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전파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요. 전국의 방 벽에는 73년에 발표된 데이비드 보위의 Aladdin Sane 포스터와 80년대 영화인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이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포스터가 보이고요. 또 RM이 들어가 있었던 레코드점에는 조지 마이클과 Boyz II Men의 LP가 보이는 등 7, 80년대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가 돋보였고요. 또 대형 햄버거 가게라든가 주유소는 80년대 뮤직비디오에 자주 등장했던 오브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디스코텍을 상기시키는 댄스홀 무대도 등장했죠. 그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박진영과 선미가 When We Disco라는 곡으로 80년대 복고풍 의상과 댄스로 디스코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디스코의 등장

1970년대 말에 처음 등장한 디스코는 80년대 경제 호황기에 청년들의 그 경쾌한 문화를 반영한 음악 장르인데요. BTS는 디스코라는 레트로 한 장르를 가져와서 과거에 친숙했던 뮤지션인 마이클 잭슨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시그니처 춤을 추기도 하면서 그들에 대한 댄스 오마주와 함께 기성세대에게는 과거에 대한 친밀한 향수를 그리고 힘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을 전하면서 일상을 이겨내기 위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 세대에게도 힐링 송이 돼 주었죠. 디스코 장르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디스코는 7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흑인 음악입니다. 디스코는 멜로디와 가사를 최대한 줄이고, 연속적인 비트를 강조한 다소 단순하기는 하지만 신나는 댄스 뮤직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서서히 붐을 이루어 갔는데요. 순식간에 모든 계층과 연령층이 이 디스코의 리듬에 열광해 갔습니다. 이 디스코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앨범은 바로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OST였는데요. 이 앨범은 당시 3천만 장이나 팔렸고요. 또 78년에는 무려 이 앨범에 수록된 8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런 기록에 필적할만한 기록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밖에 없었다고 해요. 이 영화는 당시 신인배우였던 존 트라볼타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요. 또 이 영화의 OST를 맡은 '비지스'를 디스코 음악의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팝 음악사에서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으로는 수많은 기록을 쏟아낼 만큼 유명세를 타면서 당시 발라드하고 애절한 분위기의 소프트 락으로 많은 팬덤을 확보했었던 비지스가 70년대 중반에 와서 디스코로 전향해서 디스코의 열기를 흠뻑 끌어올렸죠. 이 때문에 디스코는 정작 흑인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인 비지스가 그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백인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흑인 음악을 하면서 백인과 흑인 모두가 만족했던 음악을 했던 이후에 비지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거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청년 문화를 대변했던 디스코 장르

서정적이고 발라드 한 음악을 했던 비지스가 이끌었던 이 디스코 열풍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청년 문화를 대변해 주었습니다. 이 '토요일 밤의 열기'의 영화 포스터를 보면요. 이 존 트라볼타가 입고 있는 이 하얀 양복은 당시에 그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만들었다고 하고요. 또 당시에 신인 디자이너였던 이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걸로 해서 디자이너로서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뉴욕에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신나는 춤으로 버티며 살아간다는 노래가 바로 이 '토요일 밤의 열기', 이 비지스의 'Stain' alive'라는 곡인데요. 이 Stain' alive라는 곡은 이 토요일 밤의 열기의 OST로 사용되면서 지금도 팝 뮤직의 레전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원래 디스코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났을 무렵에 붐을 이뤘는데요. 디스코 댄스 하면 뭔가 그 미러볼이 돌고 있는 화려한 디스코텍의 댄스 무대가 떠오르죠. 이렇게 이런 디스코텍이라는 것은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고 춤추는 곳이 아니라 미리 리코딩된 음악을 틀어주면서 손님들이 춤을 추는 장소였고요. 또 그런 디스코텍에서 틀어주는 음악이 곧 디스코 뮤직이라고 불렀습니다. 과거에 스윙 시대의 빅 밴드를 떠올려보면요. 과거에 많은 청년들이 이 댄스홀에 모여서 춤을 출 때 밴드가 연주하는 시스템이 바로 스윙 재즈 시대의 춤 문화였잖아요. 그런데 이 디스코를 보면 밴드의 연주가 아니라 레코드를 틀어주면 뭔가 좀 더 간소하고 돈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었겠죠. 그래서 생겨난 곳이 이 디스코텍이었는데요. 그 결과는 대성공적이었습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서 도나 서머라든가 시크 등의 그 디스코 스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요. 또 비지스 같은 원래의 슈퍼 그룹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디스코 붐이 좀 더 고양되었던 거죠. 그 무렵에 이 디스코 열기를 정말 최고조로 끌어올린 결정판이 바로 이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였던 것입니다. 당시에 대중음악계에서도 엄청난 실력 보유자로 알려졌었던 롤링 스톤즈라든가 키스, 퀸 같은 이런 쟁쟁한 록 밴드들까지 디스코 넘버 곡 한두 곡을 만들 정도였으니까 당시 디스코 붐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이 나실 겁니다. 디스코의 열풍으로 세계 도처에 디스코텍이 생겨나기 시작했고요.

팝의 국제화를 만든 디스코 장르

또 팝의 국제화를 열어준 것도 바로 이 디스코였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고고장과 디스코텍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바로 이때였거든요. 당시의 모습을 잘 그려준 영화가 바로 '고고 70'이라는 영화죠. 이 '고고 70'이라는 영화는요, 청년들의 유희와 놀이 문화가 그 억압된 기성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영화 내용은 대구 왜관의 기지촌 클럽에서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주인공인 상규가 처음으로 그 흑인의 소울 음악의 강렬한 사운드에 매료되면서 무작정 6인조 밴드 '데블스'를 결성해서 서울로 올라오거든요. 그러면서 이 데블스가 대한민국 최초의 소울 밴드라고 자처하면서 조금씩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고 댄스와 고고 패션으로 유행을 선도하게 되면서 금지된 밤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되죠. 이들의 고고 댄스는 통행금지와 같은 법 규범도 무효화시킬 정도의 파워를 가졌었는데요. 청년들의 이런 행위는 과거 나치의 규범을 무효화시키면서 스윙 재즈를 즐기곤 했던 스윙 키즈처럼, 70년대 고고 댄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국가의 법 규범에 균열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 청년 문화의 카운터 컬처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디스코 열기는요. 그 뮤지컬 영화 '그리스', 78년에 개봉된 이 '그리스' 또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인 '페임' 그리고 84년에 개봉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플래시 댄스' 곧이어서 84년도에 케빈 베이컨 주연의 '풋 루주' 그리고 87년의 영화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더티 댄싱'과 같은 이런 청춘 로맨스 댄스 영화로 이어지면서 인기를 지속해 갔고요. 또 주류 음악으로 진입하고 나서는 이 디스코가 어떤 하이 에너지라는 명칭으로도 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