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지 록을 통해서 보는 1990년대 X세대의 정서
록을 통해서 X세대의 정서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 정제되지 않은 거친 음색으로 집단적인 저항의식을 표출한 이 밴드들이 자주 사용했던 어휘가 바로 creep이었는데요. creep이라는 말은 느릿느릿 기어간다, 라는 뜻으로 불쾌한 존재, 찌질이, 이런 말을 가리키는 속어였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좋아하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라는 곡도 있고요. 또 너바나의 Negative Creep, 이런 곡들은 전부 1990년대의 X세대의 정서를 잘 반영하는 곡입니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의 가사를 보면 '나도 스페셜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는데 나는 쓰레기에 불과해. ' '내가 여기서 뭐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나는 지하에 살고 있고 겁쟁이고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고 그냥 혼자서 중얼거릴 뿐이야. ' 이런 자신의 어떤 열악한 처지와 바보 멍청이 같은 처지를 스스로 승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1990년대 X세대의 정서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신의 어떤 현실의 위치, 우울함, 자기가 이 세상과 대결했을 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승인해 버리는 것이죠. 자신을 스스로 루저라고 밝히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한 사회가 격차를 만드는 질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이 루저인 것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것은요. 실제로 승자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패배자인 것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죠. 단지 자신들 사회의 잉여 존재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 자포자기 같은 것이었죠.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가수 중에 Beck이 있는데요. 이 Beck은 93년에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발표했다고 알려져 있는 루저라는 곡이 있어요. 이 곡은 보컬이 자신이 랩을 너무 못한다고 생각해서 자조 섞인 느낌으로 이렇게 제목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가사에도 '나는 최악의 래퍼야, 나는 그냥 루저일 뿐이야. '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역시 이 Beck의 루저라는 곡도 90년대 X세대의 정서를 한층 더 고양시켜주고 있죠.
의상의 변화
그런지 록 말고 그런지 룩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지 룩도 왠지 그런지 록과 조금 관련성이 있어 보이죠? 역시 그런지 룩도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의상 스타일인데요 낡고 자신에게 사이즈가 맞지 않는 미스매칭 한 그런 스타일링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의 전통 하이패션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 바로 이 그런지 룩인데요. 80년대 마이클 잭슨이라든가 마돈나의 의상을 떠올리게 되면 굉장히 현란하고 화려한 의복의 느낌이 떠오르죠? 하지만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의상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죠? 이렇게 그런지 룩 역시 90년대 초에 미국 시애틀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나 펄잼과 같은 이 그런지 록 밴드들의 음악과 스타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90년대 초,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이 패션으로 가장 유명해져서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패션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특히 MTV의 언플러그드 공연 당시에 입은 허름한 카디건과 청바지, 티셔츠 등이 바로 이 커트 코베인의 그런지 록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죠. 이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면 커트 코베인은 마치 머리를 빗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집에서 입던 편한 카디건을 걸치고 나온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 패션들은 정말 80년대의 디스코가 유행할 때 디스코 가수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의상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평범한 왠지 뮤지션이 잘 입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죠. 이 커트 코베인은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물 빠진 청바지, 헐렁한 체크무늬 셔츠에 낡은 티셔츠 이런 것을 입어서 물질 만능의 소비주의라든가 어떤 엘리트주의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의 염세주의, 자기혐오, 좌절, 이런 분위기를 음악과 함께 표현한 20세기 걸출한 록스타 중의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그런지 뮤지션들은 멋이나 스타일을 위해서가 아니라요. 사실은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옷이나 골라 입은 것일 수도 있고요. 또 과거에 화려한 록 밴드들의 무대 의상이나 화려한 소비 풍조에 대한 반감을 반영해서 이런 빈티지한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한 대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잘 반영했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감각 있는 젊은이들의 패션으로도 탈바꿈되었습니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나오는 할리퀸의 꾸밈없고 낡아 보이는 패션 있죠? 여기저기 티셔츠에 구멍이 나 있고 꿰매서 기운 흔적이 있는 그런 티셔츠요. 그런 할리퀸의 복장 역시 그런지 룩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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