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의 펑크록
미국의 펑크족의 유산은 80년대를 경유해서 90년대에 새롭게 성장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는데요. 이런 펑크 그룹들이 앨범 차트를 강타하면서 국내에서도 1995년, 1996년 그 무렵에 펑크와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이 자리 잡게 됩니다. 서울 홍대 앞과 신촌의 클럽에서 이런 스타일의 펑크 음악과 그런지 록 밴드를 많이 볼 수 있게 되는데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죠. 푸른 펑크 벌레라는 밴드가 먼저 <사회가 우리를 안 받아줘>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요. 그 이후에 레이지본이라는 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Do It Yourself라는 말은 펑크록의 아주 핵심적인 슬로건이기도 했었죠.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의 펑크 음악으로 관심을 끌었던 이 밴드들은요. 99년에 케이블 방송 엠넷의 영상 음악 대상에서 인디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존재 가치를 널리 알렸습니다.
노브레인
리더였던 차승우 씨가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노브레인은 정규 1집을 준비했죠. 노브레인의 정규 1집이 바로 펑크와 트로트를 결합한 조선 펑크의 완성이라고들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한국 펑크의 새로운 지평을 준비하게 됩니다. 조선 펑크라는 말은 원래 있는 말이 아니고요. 이 무렵에 노브레인 등을 비롯한 한국의 펑크 밴드들이 한국적인 펑크록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지은 이름입니다. 96년 말 달리자로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규범들을 모두 거부하겠다는 과격한 메시지를 펑크로 풀어낸 크라잉넛의 노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아주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갔죠. 이 메시지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정치색을 입힌 밴드가 바로 노브레인이었습니다. 노브레인은 뜻이 맞는 청년들을 모아서 스스로 조선 펑크라는 이름을 붙이고요. 그런 과격한 정부 비판이 청년들 사이에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 그만큼 한국 사회가 청년들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지표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2장의 음반으로 구성된 노브레인의 1집, 청년 폭도 맹진가는요. 2000년에 인디레이블 문화 사기단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했는데요. 인디 음악이 태동하면서 펑크 음악도 주목을 받았지만 90년대 말까지 펑크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대중과 언론은 음악의 본질보다는 펑크록 밴드들의 과격한 퍼포먼스와 눈에 너무 튀는 이미지에만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인디 음악과 펑크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깨뜨린 참신한 음악 실험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이 앨범에는 총 18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난투 편에 10곡이 들어 있고 청춘 예찬 편에는 8곡이 들어 있습니다. 이 2장의 음반은 동시에 발표했지만 곡의 질감이 조금 달라요. 첫 번째, 난투 편에서는 펑크록 본연의 어떤 원형질을 담아냈고요. 두 번째인 청춘 예찬 편에서는 한국적 펑크의 모델인 펑크와 트로트를 결합해서 이들이 말하는 조선 펑크의 어떤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앨범 타이틀이 청년 폭도 맹진 가인 데요. 여기에서 폭도라는 거친 단어를 사용한 것은 무언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력한 임팩트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펑크록 장르인 만큼 굉장히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검은 바탕의 앨범 재킷에 수놓은 한자가 바로 '성낼 노'자인데요. 이 한자 역시 굉장히 이미지가 강렬하죠. 한자 타이틀은 디스크 2의 타이틀곡 성난 젊음에서 이 '성난'이라는 모티브를 가져왔고요. 밴드 이름인 노브레인의 첫 글자인 '노'라는 음과 같은 한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부클릿에 수록한 암울한 분위기의 사진들은 굉장히 파격적이죠. 왜냐하면 멤버들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저항적 기운이 꿈틀대는 직설적 가사를 담은 수록곡들은 인기가요 차트에 오르는 일반적 개념의 히트와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IMF 이후에 이어진 장기 불황에 대한 미래가 불안했던 당시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굉장한 통쾌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청년 폭도 맹진가의 가사를 잠깐 보면 8번 트랙인 잡놈 패거리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잡놈 패거리의 가사를 보면 '저 거친 광야를 향해 오줌을 갈기리다, 우리는 잡놈 패거리. ' '가진 것이 없노라. ' '강소주 댓 병에 분노를 삼키리다, 우리는 벼랑 끝의 아이들, 잃을 것도 없노라. ' 이 정도의 가사만 보더라도 90년대의 서구의 펑크록과 맥락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이렇게 펑크록 밴드들은 자신들이 패배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승인하면서도 재미와 위트를 잃지 않는 데 그 매력이 있습니다. 그들의 미덕은 아마 분노의 재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이렇게 90년대를 휘어잡은 얼터너티브 록 장르는 언더그라운드였고요. 또 인디적 성격을 가졌으면서 그 중심에 아티스트가 있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래서 태생 자체가 청년들의 반항적 코드를 수용하는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특징입니다.
청년의 편이었던 록음악
롤링스톤지가 1999년을 정리하면서 90년대 아티스트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선정한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MTV와 팝 역사를 수놓은 100곡을 선정했을 때는 1위에 비틀스의 Yesterday가 선정됐고요. 2위는 롤링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선정되었고 3위가 바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였습니다. 그만큼 90년대의 대중음악사의 정점이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라는 우리가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록 음악은 언제나 청년의 편이었습니다. 록 뮤직은 장르적 특성상 청춘의 감성과 정념과 좋은 파트너십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록은 시끄럽고 강렬하죠. 그렇게 해서 록의 폭발성은 청년 문화의 솔직함과 연결되기에 적절합니다. 세상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 청년들은 록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기존의 부조리와 모순을 질타합니다. 이것이 바로 록의 저항성이죠. 수많은 뮤지션들이 오버그라운드에서 화려한 성공의 모습을 보여줄 때 얼터너티브 록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대중을 좌지우지하면서 폭발적인 저항을 보여주었습니다. 90년대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 청년들이 랩을 만들어서 사회적인 저항을 꾀했다면 백인 청년들은 록을 통해 사회적인 소외감을 대변했습니다. 얼터너티브란 사회적 현상에 대한 대안이라는 개념이잖아요. 그래서 이 말에는 80년대 팝과 현란한 록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얼터너티브 록은 그런 원형적 록의 부활을 향한 일종의 제스처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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