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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음악, 펑크 음악, 미국 음악 역사, 대중 음악 역사

1970년대의 펑크 록의 세계관(펑크락 등장배경)

1970년대의 펑크 록의 세계관(펑크락 등장 배경)

1970년대의 펑크 록의 세계관(펑크락 등장 배경)

1970년대의 펑크 록의 세계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나오는 곡은 여러분이 잘 아실 텐데요. 1967년에 발표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곡이죠. 1967년에 발표된 이 곡은 미국의 경제 성장이 최고도에 달했던 시절에 대한 낙관과 만족의 감정이 반영돼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드림과 같은 노래도 이 시기에 발표된 곡인데요. 그만큼 196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반전 운동과 인권 운동을 벌이는 청년들이 있었고요. 또 한쪽에서는 이상주의적, 낙천적 삶을 꿈꾸던 히피들도 존재하고 있었죠. 그래서 67년에 이 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런 미국 사회의 지나친 긍정과 낙천적인 사고를 반영한 곡이라고 해서 미국의 어떤 보수적 가치를 담은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루이 암스트롱은 Uncle Tom이라고 조롱을 받기도 했었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곡은 삶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표현하는 장면들마다 삽입되거나 재조명되면서 지금은 좋았던 과거 1960년대를 추억하는 명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0년대와 1960년대의 차이

1970년대는 60년대와 조금 달랐습니다. 1970년대는 미국 사회가 전례 없는 호황이 점점 시들해 가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음악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해가는 아이러니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가 들어서면서 로큰롤 음악이 전체 음반 매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를 몰아갔는데요. 그 와중에 디스코가 음반시장에 매출을 거들면서 음반 어깨가 호황을 맞이한 거 당시에 유명덕 스타들만 보더라도 롤링스톤즈 라든가 로드 스튜어트 등 당시에 유명 록스타들만 보더라도 롤링스톤스라든가 로드 스튜어트, 데이비드 보위, 블론디 등의 톱가수들은 돈방석에 앉았고요. 엄청나게 호화로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런 음반 업계의 호황과는 반대로 1970년대의 미국은 60년대의 경기 호황이 사그라들면서 경제가 하향세를 걷고 있었죠. 영국은 더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후 양국 경제의 하락

원래 2차 대전의 승전국이 영국과 미국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후에 미국은 경제적으로 승승장구했던 반면 2차 대전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몰락해 가고 있었어요. 2차 대전 중에 영국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금과 외환, 해외 자산을 매각했고요. 전후에는 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국민에게 배급제를 시행할 정도로 매우 열악했습니다. 사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수출품의 25%가 영국 산일 정도로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었는데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50년대에 인프라를 회복하고 6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출 경쟁에 뛰어들게 되면서 영국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약점이란 무엇이냐면요. 국가의 어떤 과도한 복지 국가 체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 정책 구조를 낳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영국 정부가 비효율적인 산업을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유화를 단행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인데요. 2차 대전 이후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조세 부담률이 늘어나고 정부 규제가 확대되면서 사회 보장 부담률과 맞물려 경제 주체들이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의 무기력한 태도가 일할 의욕을 떨어트리게 되자 생산성은 감소하겠죠. 그러면서 영국 경제는 침체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이런 것들을 영국인 스스로 영국병이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열심히 일해야 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복지 수당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금을 대줘야 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꺾었던 것이죠.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런 말은 당시 영국의 복지 모델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요. 이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영국의 복지 제도, 연금이라든가, 의료, 결혼, 출산, 아동 수당까지 국민의 전 생애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매우 이상적인 복지제도였습니다. 이렇게 이상적으로 보였던 복지 제도에서도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죠. 복지 지출이 급증하는 과정에서 복지를 수혜 받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높일 수 있었지만 국가 경제에는 전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면서 재정 적자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73년에는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오일쇼크가 발생했는데요. 이 오일쇼크는 석유 가격이 폭등함으로써 전 세계의 경제를 악화시켰던 사건이거든요. 그래서 이 시기에 중동 석유에 의존하던 나라의 경제가 굉장히 피폐하게 되죠. 영국 경제는 이 오일쇼크로 인해서 원래부터 나빴던 경제가 훨씬 더 나빠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겪게 됩니다. 국가와 기업의 고용 능력은 급격히 낮아지고 74년에서 77년 정도에는 실업률이 무려 12%로 급상승하는 등 당시 청년 실업률이 20%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은 정부에 대한 분노가 최고조에 달할 여건이 형성된 것이죠.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결국 영국은 1976년 IMF 구제 금융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국과 같은 선진국이 IMF 구제 금융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요. 또 이것은 선진국으로서는 역사상 최초로 IMF의 체제에 들어간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경제 상황, 영국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성장하고 있었던 청년들의 기분이 조금 느껴집니다. 이때 등장한 그룹이 바로 피스톨즈라는 밴드입니다.

섹피라는 펑크록 그룹의 등장과 배경

이 피스톨즈는 2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단 1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것을 끝으로 밴드 활동을 마감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 역사상 펑크록에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밴드이기도 하죠. 이 섹피는 단순하고 거친 사운드를 담은 3분 안팎의 미니멀한 곡으로 런던 뒷골목의 청년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습니다. 1970년대 영국의 앵그리 영 맨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펑크록의 전설로 회자되는데요. 이 섹피는 영국의 IMF 체제와 높은 인플레이션 국면에 허덕이던 영국 청년 실업자의 분노를 대변한 그룹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종교, 군주제, 가족제도, 방송국, 음반 회사, 록 스타덤, 계급제도, 자본주의, 이런 모든 기존 질서에 시비를 걸고 조롱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들은 기타의 백킹을 강조해서 아주 날카롭고 시끄러운 록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펑크록을 구사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생계를 위협받고 사회적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리로 흘러나가서 막무가내식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퍼부어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 섹피들의 가사에는 이게 과연 대영제국이란 말인가,라고 한탄하면서 차라리 이런 영국이라면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게 더 낫겠다고 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1976년은 펑크록의 원년이라고 보통 부릅니다. 76년 펑크록의 기념비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 Anarchy In The UK가 바로 이 섹피의 곡인데요. 영국은 여왕이 있는 나라이 죠. 그런데 영국을 무정부주의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의 이 곡은 당시 영국의 기성세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죠. 그래서 77년에 이 섹피는 퀸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붙인 보트를 타고 영국 국회의사당이 바라보이는 템스강 위에서 이 Anarchy In The UK를 부르다가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이 Anarchy In The UK의 가사를 잠깐 보면요. 나는 반 기독교 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지는 알고 있지. 나는 지나가는 행인을 파괴하고 싶어. 왜냐하면 나는 무정부 상태를 원하니까. 나는 영국 정부의 개가 되기 싫어. 영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자. 아마 무정부 상태는 언젠가는 올 거야 이런 식으로 어떤 영국의 국가 이념을 통째로 부정해 버리는 듯한 노래를 불렀던 것이죠. 이 노래 한 곡으로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래서 이 싱글을 발표한 EMI 레코드사는 이런 도발적인 이념을 문제 삼아서 섹피와의 계약을 해지하기까지 하죠. 이렇게 섹피의 펑크록은 단순히 실업자들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업 청년들의 분노를 공격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대중 음악사에서 아주 중요한 모먼트를 차지하고 있죠. 드디어 예술에 시대정신이 가미되었기 때문입니다. 히피들이 즐겨 불렀던, 즐겨서 들었던 사이키델릭 록에는 이런 시대정신이라든가 정치적인 문제는 전혀 배제되어 있었죠. 그런데 이 펑크록 청년들은 아무렇게나 소리 지르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노래하지만 그 가사에는 이렇게 시대정신을 공격적이고 도발적으로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펑크록은 사이키델릭 록과 달리 매우 정치적인 음악 장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펑크록의 구성원들은 주로 룸펜 프롤레타리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펑크록을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장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이 펑크록은 주로 제도권의 불합리한 것들과 투쟁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 태도가 온건한 방향이 아니라 굉장히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에 어른들의 염려를 불러일으켰죠. 심지어 섹피는 신성 모독 행위를 가미하기까지 합니다. 77년에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25주년 행사가 열리던 시기였는데요. 이때 섹피가 발표한 <갓 세이브 더 퀸>,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 이런 제목의 노래를 불렀어요. 여기 가사를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국 왕실과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노골적인 비아냥에 담겨 있습니다 더욱이 이 곡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파시스트 정권과 동일시하면서 영국에는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영국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곡은 발표되자마자 영국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요. 이 일로 인해서 극우파들이 섹피 멤버들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본 것인데요. 존 라이든과 엔지니어 빌 프라이스, 프로듀서 크리스 토마스는 건물 주차장에서 Queen's gang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몽둥이로 습격을 당한 적이 있고요. 또 Holidays In The Sun, Pretty Vacant, 이런 노래는 청년들의 분노를 가져오게 한 원인인 영국 IMF 체제와 그로 인해 상승된 영국 사회의 실업을 소재로 다뤘습니다. Anarchy in the U. K. 와 함께 이 3곡은 싱글로 발표돼서 게릴라가 진지를 격파하듯이 영국 차트를 강타했습니다.

펑크밴드 - 클래시 그룹 등장 배경

섹피 말고도 또 다른 유명한 펑크 밴드를 들자면 클래시를 들 수 있는데요. 이 클래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곡으로 펑크록을 실현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섹피가 어떤 자기 파괴적인 미학을 담당하면서 펑크록 장르를 이끌었다면 클래시는 그런 펑크 정신을 정치 운동의 형태로 이끌었다고 평가됩니다. 1977년에 발표한 클래시의 첫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고용기회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영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적 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대가 낳은 영국의 펑크 세대는 60년대 우드스톡 세대의 긍정적이고 관용적인 이념과는 정반대로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불안을 표현했습니다. 클래시의 고용 기회라는 곡의 가사를 잠깐 보면 '그들은 나에게 일자리를 줬어, 가게도 줬고 일자리를 줬으니 닥치는 대로 하는 게 좋다는 거야. ' 그런데 그렇다고 BBC 방송국에서 차나 끓이는 일을 해야겠어? 정말 경찰을 해야겠느냐고. 고용 기회라는 말은 허울뿐이야. 그들이 너희한테 주는 직업은 결국 다 내쫓는 거야, 이것은 제대로 된 고용기회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어떤 국가에서 일자리를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갖게 되는 고용 기회라는 것은 허울뿐일 뿐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는 장치는 아니었다는 불안과 불만이 잘 표현되어 있죠. 이 클래시 역시 영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그런 파시즘이라든가 인종 차별 정서를 공격하면서 굉장히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에 담았습니다. 클래시의 리더가 조 스트러머라는 사람인데요. 이 조 스트러머가 런던에서 섹피의 공연을 보고 그것에 감화되어서 자기도 펑크 밴드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해서 만든 것이 바로 클래시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섹피보다는 조금 늦게 등장한 밴드이지만 클래시는 섹피보다 정치적인 문제를 담은 양질의 펑크 음악을 선보여서 어떤 팬들은 섹피보다 더 훌륭한 평가를 내기도 하고요. 또 영국에서만 존재감을 알렸던 섹피와 달리 클래시는 세계 무대 진출에 성공해서 전 세계의 팬을 거느리고 있죠. 이 클래시를 세계적으로 알린 곡이 <백색 폭동>이라는 곡인데요. 지금 나오고 있는 곡이 바로 <백색 폭동>입니다. 이 노래도 제목에서 조금 눈치를 챌 수 있듯이 흑인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벽돌을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지, 백인들은 학교에서 둔감해지도록 교육되어 모두 하라는 것만 하지. 백인들의 순응주의와 흑인들의 정치 운동성, 이런 것을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죠. 아무도 감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아, 모든 권력은 부자들의 손에 있고 우리는 너무 겁쟁이들이라 시도조차 못해보고 거리를 배회할 뿐이야. 백색 폭동이 있어야 해, 나 같은 백인 폭동이.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당할 것인가, 퇴각할 것인가 퇴진할 것인가,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이 노래를 부르는 주체는 백인 청년입니다. 하지만 백인 청년, 같은 동료인 백인 청년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밖에서 저렇게 폭력적 투쟁, 인권 투쟁을 감행하는 흑인들처럼 움직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죠. 이 부분은 바로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웠던 노먼 메일러의 백색 니그로, 화이트 니그로와 같이 연결되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시간에는 섹피와 클래시를 대표로 한 영국 펑크록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